'대한민국살리기 운동' 이끌어온 전광훈 목사 존재감 빛났다

전광훈 목사(국민혁명본부 의장)가 27일 오후 ‘평택 주한미군 수호 국민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남석현 객원기자
사랑제일교회의 역사를 그린 다큐멘터리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가 나왔다. 구약성경 에스더 7장에 나오는 이 구절이 1983년 교회 설립 이래의 표어였다는 사실이 우선 놀랍다. 최근 몇년 대한민국살리기 운동을 이끌어 온 전광훈 목사와 사랑제일교회의 존재감을 ‘계시’한 듯하다. 민족복음화는 독실한 기독교인들의 보편적 소망이지만 개척교회 시절부터 이 목표를 내건 경우는 흔치 않다.
유대인들이 페르시아제국의 노예로 있던 기원전 5세기경, 아하수에로(크레르크세스1세)의 왕후가 된 미모의 유대여성 에스더는 왕에게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 간구함으로써 몰살당할 상황의 동족을 구했다. ‘체제위기의 대한민국’이 2500년 전 유대인들의 처지와 오버랩된다. 인생사 세상사에 고난 역경은 불가피하며, 그것을 어떻게 해석해 현재 미래를 헤쳐나가는가가 생존과 발전의 저력이다. 참고할, 영감을 얻을 만한 자기나라 역사 내지 위인들이 많을수록 유리하다. 기독교인들은 수천년 유대인들의 고난과 영광까지 ‘자기화’ ‘내면화’해 ‘현재의 삶’에 적용한다. 기독교 특히 일제시대와 전쟁을 겪은 한국기독교가 종교로서 압도적 영향력을 발휘해 온 요소다.
구약에서 선민(選民)이란 유대민족을 뜻했지만,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국가·인종을 초월한 새로운 선민으로 등장했다. 이 새로운 선민은 절대자와 교감하며 그 뜻을 세상에 펼쳤고, 종교개혁 이후 크나큰 희생을 치루며 ‘자유시장경제’ ‘법치’의 틀을 도출해냈다. 극한의 고난을 거쳐 얻어질 성취를 아는 사람들, 구약의 선지자들을 존경하고 예수를 섬기는 사람들에겐 모든 고초를 축복의 예시와 근거로 받아들이는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1983년 답십리에서 출발한 사랑제일교회가 12년만에 장위동 성전을 마련하기까지 역사는 무수한 한국교회들의 성장사와 다르지 않다. 좁고 열악한 환경의 공간에 서너명이 모여 예배보던 개척교회가 수백명 수천명이 함께할 주 성전, 주일학교 등 다양한 교육공간 및 부대 시설까지 갖추게 되는 과정이 곧 대한민국의 고도성장기이자 중산층의 성장사다. 농어촌 산촌 고향을 떠나 온 사람들은 고달픈 자본주의적 도시의 삶 속에 교회를 통해 위안을 얻으며 근대시민으로 커갔다. 근면 성실 정직의 생활윤리, 특히 십일조와 각종 헌금을 통해 소득의 일부를 교회와 공동체에 돌리는 구도에 익숙하다는 점이 여느 종교와 크게 차별된다. 막스 베버의 지적대로, ‘프로테스탄티즘’이 곧 ‘자본주의 정신’이었던 것이다.
한국경제가 80년대 고도성장기를 거치며 대형교회들이 탄생했다. 규모와 활동 면에서 세계 최고로 꼽히는 교회가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 지난 몇년 대한민국살리기 운동의 중심에 선 것은 세계 1~5위 안에 든다는 교회들이 아니라 사랑제일교회였다. 전광훈 목사의 개성과 특별한 지향성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애국적 헌신과 그로 인한 고초가 구약성경 속 선지자들의 모습 그대로, ‘하나님이 세우신 선지자’ 특유의 면모다. 기독교적 용어를 빌리는 것 외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선지자적 목사의 감화와 인도 속에, 가정 생업 교회밖에 모르던 평범한 시민들이 대통령탄핵과 문재인정부 시절의 험난한 애국운동에 나서게 됐다.

전광훈 목사가 지난 6월 성북구 사랑제일교회에서 ‘간첩척결을 위한 천만 서명운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자유일보 DB
한반도 유사 이래 최대로 일컬어진 전 목사 주도의 광화문집회들, 특히 사랑제일교회가 청와대 앞에서 시작한 이른바 ‘광야교회’의 의미와 감동도 새롭다. 다큐의 중심엔 초창기부터 전 목사를 따라온 교인들과 최근 몇년 애국운동에 감화된 새 교인, 청년부 교인들 등의 인터뷰가 놓였다. 한반도역사상 개신교에 대한 정권적 차원의 탄압은 해방정국의 김일성체제 이후 처음이었다. 해방 이전 기독교 부흥은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불리던 평양을 비롯해 한반도 북반부가 먼저였으나, 기독교인들은 대거 월남해야만 했다. 공산주의와 공존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당시로선 가장 근대적 문명인이던 기독교인들의 엑소더스가 북한의 이후 국가발전에 큰 결핍으로 작용했다는 학술적 지적도 있다.
예수의 삶을 따라 헌신과 순교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전통이 기독교라지만, 사랑제일교회의 최근 행보를 보면 역시 담임목사에 대한 무한 신뢰와 애정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다큐 속 교인들의 모습이 새삼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교회생활을 통한 인격적 사회적 성장, 경제적 안정 등은 개신교도들의 일반적 소망이자 현실일 터인데, 그 이상의 ‘무엇’이 전 목사를 따라 가시밭길에 동참하게 만들었다. 정권과 언론은 합세해 코로나19 재폭발 책임을 전 목사와 사랑제일교회에게 뒤집어씌웠고, 수십년 피땀눈물의 결정인 성전에서 교인들을 내몰았다. 그 처절한 시간을 겪은 다큐 속 인물들이 충만한 ‘기쁨’과 ‘사랑’을 뜨겁게 또는 담담히 고백하고 있다.
2차대전 직후 유라시아대륙의 끝자락 한반도의 남쪽부분만이 자유세계의 국가로 태어나 유지됐다. 세계사의 기적이다. 그 기적의 핵심과 출발에 기독교인 이승만이 있었음을 앞장서 설파한 것도 사랑제일교회 전 목사였다. ‘종교의 자유’를 위한 투쟁 과정인 기독교역사, ‘종교의 자유’ 위에 비로소 ‘다양한 종교’ ‘무종교의 자유’도 보장된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그래서 전 목사와 사랑제일교회의 절박함이 기독교인들만의 문제일 수 없는 것이다.
구교 신교의 오랜 종교전쟁 결과, 국가나 권력자가 특정 종교를 강제하거나 금지할 수 없다는 원칙이 성립했다. 이 원칙을 현실 정치체제로 정착시키는 과정이 서구근대사, 자유민주주의의 역사다. 1923년 발표된 글 ‘공산주의 당부당(當不當)’에서 이승만이 공산주의가 ‘부당’한 이유로 든 다섯 가지 중 하나가 종교말살인 이유다. 종교의 자유야말로 자유의 근본이자 출발임을 꿰뚫어 본 것이다.
세계기독교사상 한반도는 여러 면에서 특별하다. 선교사가 포교를 시작하기 전 스스로 기독교 교리를 접수해 성직자 파견을 요청한 유일의 나라다. 이어 참혹한 순교의 시대가 지나자 19세기말 개신교 선교사들이 찾아와 근대적 교육과 의료를 펼쳤다. 나아가 한국사는 기독교를 통해 세계사와 깊이 연결돼 있다. 인류사 최초로 특정 세계관과 가치관에 의해 디자인된 나라 미국, 그 건국정신을 한반도에서 구현하려 한 게 ‘이승만의 대한민국’이며 6·25는 이에 대한 근본적 부인이었다. 미국 중심의 유엔군 참전이 그토록 빨리 진행돼 국가멸절의 위기를 극복한 것은 한국-미국의 기독교 네트워크 없이 상상할 수 없다. 전후 복구도 마찬가지다. 60대 이상 한국인들 가운데 교회에서 처음 우유를 맛본 사람들은 기독교 중심의 서방 원조체계의 수혜를 실감으로 기억할 것이다.

서울 성북구 장위동에 위치한 사랑제일교회.
그렇게 태어나 유지돼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대한민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일부가 돼가고 있었음이 문 정권을 통해 분명해졌다. 개신교에 대한 그들의 적대감은 뿌리가 깊다. 자유주의 시장경제에서 배출된 중산층 상류층을 ‘적폐’로 간주한다. 대한민국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아슬아슬하게 정권교체를 이룬 중심에 사랑제일교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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